소식 [후기] &lt제7회 열린인권강좌> 제7강: “분배정의와 공동체구성원의 윤리”

관리자 2019-08-02 6,254

[후기] <제7회 열린인권강좌> 제7강: "분배정의와 공동체구성원의 윤리"
(강연자: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작성자: 김현우 (정치외교학부)

 
  2019년 7월 23일 (화요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제7회 열린인권강좌: 어떤 정의? 사회정의와 인권에 대한 질문들>의 마지막 강의는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분배정의와 공동체구성원의 윤리“였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오건호 위원장은 ‘정의로운 분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정의로운 분배의 문제는 총량이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지적하며 강의를 시작하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된 분배 기제는 시장에서 자본과 노동 간에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국가가 자본과 노동에 분배된 일부를 재분배하는데, 재분배는 이미 시장에서 한 번 분배된 것을 다시 나누는 이전 작용이다. 재분배는 국가라는 공적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영역에서 작동하므로, 정당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재분배를 둘러싸고는 계층, 계급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의 담론이 존재하며, 롤스의 정의론을 통해 복지국가를 정당화할 수 있다.

  사회적 이전의 방식은 크게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로 나눌 수 있다. 점차 늘어난 복지 재원을 둘러싸고 선별과 보편이라는 두 가지 분배 방법이 대립하였고, 서구 복지국가는 선별에서 보편으로 나아갔다. 한국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건강보험·연금제도·조세제도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이슈가 아닌,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2010년 선별과 보편이 대결하였다. 보편적 복지는 한정된 재원으로 인해 재분배 측면에서 예산 사용의 효율성이 선별적 복지에 비해 작을 수 있다. 그럼에도 진보세력은 보편복지를 주장했고, 무상급식을 지향하는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며 무상급식이 실시되었다. 당시 무상급식 지지자들은 보편적 복지보다는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격차와 차별이 고착화 되었고,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차별 반대라는 시대 정신 속에 보편적 복지가 승리한 것이다.

  무상급식 이후 복지 활동가들이 의식적인 활동을 진행하였고, 무상급식이라는 단일한 소재에 대한 논의가 2011년에는 3무1반(급식·보육·의료+등록금)이라는 구호를 통해 담론 논의로 확대되었다. 더 나아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정치권이 모두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게 되었다. 서구에서 반세기 걸린 일이 한국에서는 2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보편복지 지지자들 가운데에서도 서구의 과정을 보면 보편복지가 맞지만 현 상황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주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재분배의 역설을 근거로 오히려 보편적 복지가 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이 차별 반대라는 시대 정신 속에서는 호소력을 발휘했지만, 이제 보편주의를 다시금 살펴봐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복지제도는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사회수당의 세 유형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공공부조는 선별복지이며, 사회보험은 보편복지다. 사회서비스/사회수당은 보편·선별 논쟁이 진행 중이며, 노동시장 바깥의 사람들이 주 대상인 영역이다. 지금 한국에서 공공부조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으며, 사회보험은 많은 사람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반면 사회서비스/사회수당 대상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위계층의 복지는 정체되고 중간 이상 계층에 대한 복지만이 늘어나 복지의 역진적 불균등 발전이 생겨나고 있다. 1차적 문제는 시장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포용 성장을 표방하고, 복지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보편복지를 확대하며 하위계층 재분배가 늘었지만, 한국에서는 보편복지의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위계층의 복지가 정체되고 있을까. 가능한 답변 중 하나는 아직은 보편복지가 격차를 줄이기까지 시간이 충분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산당 분배 효과는 떨어짐에도 서구에서 보편복지가 하위계층의 복지를 늘린 것은 보편복지가 증세를 견인했기 때문이다. 선별복지만 이루어질 때는 중간계층 이상이 증세를 거부하지만, 서구 복지국가는 보편복지를 통해 중간계층 이상의 조세저항을 줄였고, 이를 통해 하위계층의 복지를 늘릴 만큼의 증세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서구에서는 보편복지가 세금과 복지의 선순환을 가져와 전반적인 복지 수준을 높여 결국 하위계층 생활도 좋아졌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서구처럼 증세와 보편복지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편복지를 기반으로 증세할 수 있으면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좀 더 기다려보아야 한다는 것이 이 답변이 제시하는 해결책이다.

  가능한 다른 답변은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는 답변으로, 우리의 보편복지 담론이 복지국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들은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공약했으나 그 내용은 모두 달랐다. ‘100% 30만원’, ‘하위 70% 30만원’, ‘하위 50% 30만원’, ‘50% 누진 인상’ 등 모두 다른 방식의 기초연금 인상을 공약한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심상정 후보가 단일 제도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보편적인 ‘100% 30만원’을 주장하였고,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면 가장 보수적인 유승민 후보가 선별적으로 비쳐지는 ‘50% 누진인상’을 주장하였다.

  스웨덴 공적연금 체계는 90년대 후반 복지국가 위기 담론으로 인한 개혁 전까지 모든 노년층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기초연금 위에 소득비례연금이 추가되는 형태였다. 개혁 이후에는 기초연금이 저소득층에게만 소득비례연금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이에 보편성이 훼손되었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오히려 스웨덴에서는 포괄성과 급여의 적정성이라는 보편주의 원칙이 더욱 잘 구현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보편주의를 단일 제도적 측면이 아니라 체계 전체의 포괄성과 적정성으로 파악한 것이다. 유럽 공적연금 체계를 보면, 각 나라는 제도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연금에서의 포괄성, 적정성을 갖추었다.

  기초생활수급액을 80만 원으로 설정했다고 했을 때, 의료 50만 원, 주거 30만 원을 지출하면 생활에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그래서 의료, 주거 복지 제도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은 상병수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복지 제도가 다 도입되어 있다. 이제는 각 제도들을 조합해서 벽을 만들고 집을 짓는 시기여야 한다. 지금 한국의 연금 체제는 포괄성을 갖추었지만, 급여가 적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때 모두 단일한 제도 수준에서 보편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정에 맞는 제도를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각 부문의 연합인 체제의 수준에서 보편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서구에서 복지국가는 제도가 중첩되어 체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보편·선별 논쟁이 단일 제도, 단일 프로그램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은 단일제도 수준을 초월해 체제 수준에서 보편복지를 논해야 한다. 그 결과로 ‘50% 누진 인상’의 입장도 진보주의자들이 보편복지를 주장하면서 채택할 수 있다. 한국 복지에서 불균등이 일어나고 있으면 제도에서 체제 수준으로 확장하여 보편복지를 말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기존 제도도 보완할 수 있고, 새로 등장하는 제도도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보편적 복지체제 구성이 성공하더라도 증세의 정치가 실패하면 보편복지의 역설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복지의 보편성을 구현하고 싶으면 다수의 지지 하에 증세로 이어져야 한다. 앞서 본 ‘50% 누진인상’이 단일 제도로는 보편복지가 아니더라도, 그 제도가 체제 전체에서의 보편성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이 그 제도를 선호하면 그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이어 오건호 위원장은 기본소득을 분배 정의에 비추어 설명하였다. 기본소득은 단일 제도 수준에서 가장 단순하고 보편적이다. 복지국가는 복지를 필요에 따라 제공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필요를 보지 않고 시민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보장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보편복지와는 다르다. 보편복지 체계는 노동과 연계되어 있으나, 기본소득은 노동과 복지의 연계를 끊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기본소득 담론은 긍정적이지만 현실에 비추어 평가한다면 비판적인 시각도 가능하다.

  기본소득이 처음 논의된 스위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살만큼 소득을 주는 것이었는데, 지금 실현되는 기본소득은 매우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기본소득은 생활에 충분한 금액을 보장하는 ‘완전 기본소득’, 적은 금액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낮은 기본소득’, 사회적 필요가 있는 데 보장하는 ‘사회수당형 기본소득’, 저소득층에 지급하되 보충성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공공부조형 기본소득’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회수당형 기본소득과 공공부조형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체제의 일부로 볼 수 있으나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기본소득을 중앙정부에서 실험한 국가로 핀란드가 있다. 핀란드는 근로동기가 없는 실업부조 수급자 가운데, 2000명을 뽑아 실업부조에 보충성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실험하였다. 그 결과 근로동기가 생기지도 저하되지도 않았고, 삶의 만족도는 높았다. 이때, 핀란드의 실험이 저소득층의 근로동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기본소득이 당장 현실에서 실현될 때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장기적으로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기본소득이 역사적 지향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의 문제가 있다. 고용률이 70%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기본소득을 당장 실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본소득이 미래 역사적 비전과 잠재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시점에서의 적절성과 분배적 정의를 획득해야 한다.
 
  이어 오건호 위원장은 복지가 시혜에서 권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복지국가를 짓고, 복지국가를 짓고 난 후에는 지켜야 한다. 복지국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윤리·가치가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윤리·가치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복지를 받으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 복지가 권리가 된다.

  이때 주의할 점은 권리는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현 시점은 복지에 대한 권리적 요구는 증대되고 있는데, 이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의무는 우리에게 내재화되지 않았다. 복지제도는 국회에서 채택하지만, 연대성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체가 들어가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오건호 위원장은 강의를 마무리하며 복지국가를 복지제도와 복지주체라는 두 기둥이 받치는 집이라고 요약하였다. 이어 질의응답이 진행되었다. 한 수강생은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제도가 적정성과 포괄성 측면에서 어떻게 연계되는지 질문하였다. 이에 오건호 위원장은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충성의 원리로 인해 기초연금 수급액만큼 기초생활수급액에서 차감되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보충성 원리가 적용됨에 따라 가처분 소득의 형평성은 저하되고 있으며, 기초연금에서 보충성과 형평성 중 어떤 원리를 더 중시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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