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마당]대학이 ‘성범죄 학생’ 징계 못한 이유
박찬성 | 변호사·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지난해 문제됐던 어느 대학의 집단적 성희롱 사건에서 일부 학생을 제외하고는 실효적 징계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몇몇 학생의 경우 졸업이 임박한 시점이었는데 졸업을 유예시킬 수 있는 명문의 근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란다. 적절한 제재 처분의 필요성이 명백한 때조차도 대학은 아무 조치도 내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이 졸업유예 등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이로 인해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은 예상해 볼 수 있다. 여기 두 명의 학생이 있다. 둘 모두 제명 또는 퇴교 처분이 내려질 만한 수준의 동일한 잘못을 범했다고 가정해 보자. 한 명은 1학년 신입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졸업을 1개월 남긴 4학년이었다고 하자. 절차상 최종 징계 처분까지는 1개월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면 1학년 신입생은 제명 처분을 받고 학교를 중도에 떠나야 하지만, 4학년 학생은 같은 잘못을 범하고도 ‘무사히’ 졸업장을 수여받고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은 연구와 강의를 통해 지식만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다. ‘고등교육법’은 오히려 학문 전수에 앞서서 인격의 도야를 대학의 근본목적으로 명시해 두고 있다. 비록 졸업에 필요한 이수학점이나 시험, 논문 제출 등 형식 요건은 충족했지만, 재학 중 성희롱·성폭력 등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어긋난 잘못을 저지른 자가 있다면 이 학생이 대학의 참다운 교육목적에 따른 졸업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할 수 있을까? 각 대학이 학생징계 관련, 규정상에 필요한 경우 학생의 졸업을 유예시킬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명문 규정이 없더라도, 학생에게 중대한 징계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졸업요건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대학은 결코 ‘학위 자판기’가 아니다. 대학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필요한 교육 내용과 방법을 형성해 나가고 이를 시행해 나가는 주체이다. 학생에게 징계사유도 없을 때, 학생은 이수학점, 시험, 논문 등 요건을 충족하고 학위를 취득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학생에게 중대한 징계사유가 있음이 이미 대학당국에 인지됐다면 그 권리가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당연하다. 법원이 인정해 온 바와 같이, 교육목적의 제재조치에 관해 대학은 폭넓은 재량권을 갖는다. 응보적 이유에서 성범죄 교원의 의원면직을 제한하는 것에 아무 문제도 없다면, 교육시행 주체인 대학이 피교육자인 학생에게 교육적 목적에서 졸업을 일시 유예하는 조치를 내리는 것은 문제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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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82106005&code=9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