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아시아 연구소 영원홀에서 ‘가정폭력’을 주제로 인권/성평등 교육의 날 강연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모먼트』 등의 공저자이자,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오랜 활동을 해오신 김홍미리 강사를 모시고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우리가 되짚어야 할 지점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김홍미리 강사는 젠더폭력이 '가정'폭력으로 호명될 때 여성의 존재는 사적화, 개별화되면서 '폭력'의 맥락은 삭제되어 온 것을 지적하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꾸준히 지속되어 오고 있음에도 왜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의 문제로 혹은 '사회'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지 생각해 볼만한 여러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특히 우리의 일상을 패러디하고 재현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 드라마 속 캐릭터, 쏟아지는 대중매체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별짓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모성 숭배와 'OO녀/여OO'으로 지칭되는 여성에 대한 멸시는 여성혐오의 역사 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분석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대상’으로 인식되는 ‘가족’내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은 폭력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젠더관점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보스턴 마라톤 최초의 여성 참가자였던 캐서린 스위처의 사진이었다. 당시는 여성이 마라톤에 공식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때였다. 사진 속에는 달리는 캐서린을 발견하고 그녀가 뛰는 것을 막으려고 경기장으로 뛰어든 감독관, 캐서린이 끝까지 뛸 수 있도록 감독관을 밀쳐내는 코치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는 마라톤 참가자들이 있었다. 김홍미리 강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마무리하였다.
우리는 캐서린을 막은 감독관이 될 것인가, 그녀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도운 코치와 남자친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다른 참가자가 될 것인가?
성평등한 사회와 인권친화적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떤 위치에서 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