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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4회 열린인권강좌> 제8강: "사회보장권의 쟁점과 과제"
  • Category소식
  • Writer서울대인권센터
  • Date2016-07-25 16:45:21
  • Pageview3647
<제4회 열린인권강좌>
[후기] 제8강: “사회보장권의 쟁점과 과제”

 
(강연자: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연구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센터장)
 
이상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제4회 열린인권강좌는 인권이 발달되어 온 역사와 그 철학적 배경을 살핀 뒤 이제는 사회권 각론을 다루고 있다. 여덟 번째 강연자이신 노대명 선생님께서는 “우리는 지금 어떤 위기에 봉착해 있는가?”라는 부제로 사회보장권을 조명하셨다.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 건강권, 문화권 등 다른 사회권보다 사회보장권에 주목할 때가 많다. 사회 양극화가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재분배’의 역할을 갖는 사회보장권이 자주 논의되는 것이다.
 

(사진: 안미혜)

“사회권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사회보장권 강의이니만큼 뻔한 질문이라 여겼다. 그러나 사회보장권보다 노동권이 조금 더 정답에 가까웠다. 세계인권선언의 문구를 빌리자면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 및 생계를 결핍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사회보장권이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실업자들, 질병의 악화나 특별한 기술이 없어 일하지 못하는 가정, 기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이다. 하지만 앞의 문장을 다시 살펴보자.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동하는 권리가 사회보장권이다. 그러므로 전제인 노동권이 조금 더 중요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사회보장권을 설명하면서도 우선순위를 놓치지 말자고 역설하신 것이다.


여하튼 사회보장권은 ‘실업보험, 주거복지, 건강보험, 교육권 보조’ 등 여러 사회권을 아우르기에 더욱 폭넓게 탐구해야 하는 권리임을 강조하시며 사회보장권 이야기로 되돌아왔다. 이번 강의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키워드 네 가지는 ‘약자의 배제’, ‘복지정치’, ‘희생 위의 제도’, ‘사회보장권의 역사’였다.
 
사회보장권에 대해 교과서나 논문으로 공부해보지 않았던 필자는 ‘약자의 배제’라는 키워드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빈곤층을 위할 것 같은 제도가 사실 다른 계층에 더욱 도움이 되는 제도라니. 근거도 너무 명확했다. 최후의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보장 수준은 낮은데, 다른 안전망인 기타 사회보험들은 절대적인 양으로 볼 때 더욱 탄탄히 정규직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최근에 읽었던 조세연구원의 연구결과(연합뉴스의 분석기사에 따르면 1분위가 가장 많은 현금, 현물 급여를 받긴 하였으나 소득이 두 번째로 높은 구간인 4분위가 두 번째로 많은 지원을 받았으며 나머지는 2분위, 5분위, 3분위 순)와 강의를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사진: 안미혜)
 
‘복지정치’란 복지가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양상을 뜻한다. 복지제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를 설계하는 일뿐만 아니라, 조세를 누구에게 부담하는가 하는 문제까지 다루어야 한다. 물론 복지정치는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져 ‘지혜’가 모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검은 복지정치의 늪에 빠진 게 아닌가 한다.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유쾌한 일일 수는 없다. 고소득층은 조세부담률이 큰 비율로 상승하기에 더욱 저항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선진 복지국가와 달리 조세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늪을 더욱 깊게 만든다. 우리는 국가가 조세를 거두는 과정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신뢰를 결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논쟁이 풀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권이 조금이나마 진보해나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강연자께서는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를 ‘희생 위의 제도’라고 평가하셨다.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인데, 빈곤층이 극심한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생명을 포기하는 사건으로부터 제도가 발전해왔다는 주장이다. 청중 질문 시간에도 지적되었듯이 이를 제대로 된 진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든다. 특정한 제도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사람이 죽었으니 빨리 이를 보완하자? 체계적인 토론을 거치지 못하므로 졸속 제도들이 생겨날 수 있는 허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보장권의 역사’를 통해서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제도학파 경제학자인 장하준 선생님께서 노예제 폐지가 요원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강조하며 사회진보를 역설하기도 하는데, 매우 비슷한 논리였다. 강연자께서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집단이 만든 포스터를 인용하셨다. 1877년에는 “아동노동을 금지”가, 1919년에는 “노동시간 단축(48시간)”이, 1947년에는 “노령유족연금”이, 1964년에는 “유급휴가”가 경제를 망치는 요인으로 몰렸다. 하지만 너무나도 명백하게 이들은 지금 사회보장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진: 안미혜)
 
다소간 위기는 명확하게, 희망은 희미하게 보였다. 어떤 것이 문제임은 통계로, 사례로 논증할 수 있었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개선방법 역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셨을 것이다. 가령 노인 복지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현물급여를 늘리기보다는 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연령층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적임을 강조하셨다. 모든 수강생들에게 이 강의가 다르게 다가왔을 것인데, 필자에게는 정치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았다. 사회보장권을 확대해나갈 방법을 토론하고 적용할 수 있는 정치력이 부족한 현실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덧붙여 강연이 끝나고도 필자의 부족한 호기심에 유쾌히 응해주신 노대명 선생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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