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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 성폭력 피해와 ‘사과’
  • Category뉴스
  • Writerprevent
  • Date2016-08-29 09:29:15
  • Pageview3684

[기고 ] 성폭력 피해와 ‘사과’

어릴 적부터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과의 뜻을 전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 간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사과 의사를 적절한 방법으로 제 때에 전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연인이나 친구 간에 제대로 사과하는 일조차도 쉽지 않을진대, 하물며 성희롱·성폭력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이에게 사과 의사를 전하는 것이 단순한 문제일 리 없다. 실제로 이에 관한 미숙한 대처로 피해자의 마음에 한 번 더 상처를 입히는 예는 종종 발생해 왔다.

사과 의사 전달의 방법과 시점에 대하여는 온전히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 때때로 가해자들은 책임을 조금이라도 경감하기 위한 의도에서, 또는 불거진 사안을 하루라도 빨리 무마하고 조용히 넘기려는 생각에서 사과 의사를 조속히 피해자에게 전달해 달라거나 대면사과의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보채곤 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가해자와 가해사실을 상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불순한 의도가 없는 진실한 사과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예전 어느 대학에서 피해자가 원치 않음을 분명히 했음에도 가해자의 사과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피해자에게 종용했던 사례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반복되어서는 아니 될 2차 가해의 전형이다.

다른 한 편으로 피해자는 양가적인 심리상태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가해자로부터 확실한 사과 의사를 전달받고 싶어 하면서도, 일회적인 사과 의사 전달로써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모든 절차가 종결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사과까지 받았으니 이쯤에서 끝내지?’ 라는 식의, 유·무언의 압박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해졌던 예들은 이제껏 적지 않았던 듯싶다. 그렇기에 피해자의 이 같은 두려움은 터무니없는 기우라고 할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진심 어린 사과 이상의 책임을 묻는 것이 불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때라면 사과만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피해자에게 분명하게 인식시켜 줌으로써 더 이상의 불안감을 가지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사안이 중대하다면 사과가 그 책임의 전부일 수 없으므로 이는 너무나 당연하기도 하다. 

사과가 성희롱·성폭력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단추가 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서는 이를 직접 전달하는 편이 전달하지 않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처와 해결에 있어서는 피해자 의사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도 ‘중한’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 의사는 개별사안마다 제각기 상이하다. ‘가해자가 사과하겠다고 하니 전달해주기만 하면 알아서 다 해결되겠거니’ 하는 안이한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마땅하다.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16 여성신문의 약속 ‘보듬는 사회로’, 무단전재 배포금지>

1404호 [오피니언] (2016-08-24)

박찬성 변호사 ‧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polics82@snu.ac.kr)




 


출처: http://www.womennews.co.kr/news/96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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