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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성희롱을 성희롱이라 하지 못하는 현행법
  • Category뉴스
  • Writerprevent
  • Date2016-08-29 09:32:35
  • Pageview3588

[기고] 성희롱을 성희롱이라 하지 못하는 현행법
 

직장인 ㄱ씨에게 그날은 정말이지 ‘기분 더러운’ 하루였다. 회사에서 동료직원 ㄴ씨가 ㄱ씨를 가리키면서 “원래 쭉쭉빵빵 몸매 죽여주는데 오늘은 아주 옷차림까지 눈요기 제대로 시켜주는구만…” 운운하며 음담패설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불쾌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던 ㄱ씨는 퇴근길에 옆집에 사는 ㄷ씨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런데 사전 모의라도 한 듯, ㄷ씨도 ㄱ씨를 가리키면서 회사에서 ㄴ씨가 했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ㄱ씨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동일한 언동에 대해서조차 동일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성희롱 관련 현행법은 아직까지도 그 규율대상을 ‘직장 내 성희롱’에 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정확히 똑같은 내용과 방식, 표현이었다 하더라도 ‘옆집 사람’ ㄷ씨의 언동은 이른바 ‘직장 내 성희롱’이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에 특화된 권리구제절차에서 ‘성희롱으로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가해자가 누구이며 어떤 가해사실이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성희롱은 형사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ㄷ씨의 언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말에 더하여 모욕적 언사가 포함되어 있다거나 혹은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ㄱ씨는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물론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 법리에 근거하여 ㄷ씨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길이 열려 있기는 하지만 시간과 비용 등 여러 측면에서 이것이 얼마나 실효적일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닌가? 완전히 똑같은 말과 행동을 했는데도 직장 내에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직장 밖에서 있었던 일인지에 따라 규율과 처리가 달라진다는 것 말이다.

최근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학생 간 ‘단톡방 성희롱’ 사안에서도 피해 학생으로서는 문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가지고 갈 수조차 없는데, 업무·고용상의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법은 성희롱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공식적 구제절차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회색지대를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하는’ 것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라면, 우리 현행법은 성희롱을 성희롱이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모호하고 부조리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법조계 일각에서 만연한 성희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를 형사범죄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의미 있는 지적이지만 성희롱은 그 행위유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정형적으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 반드시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인지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성희롱의 형사범죄화 논의에 앞서 법제상 정비되어야 할 부분은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우리 법의 협소한 시야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이다. 어떠한 관계에서 언동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말과 행동이 있었는가가 문제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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