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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 대학 성폭력과 공감 없는 예방교육
  • Category뉴스
  • Writerprevent
  • Date2016-10-11 10: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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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학 성폭력과 공감 없는 예방교육

아직도 많은 대학에서 성희롱·성폭력 사안에 대한 적정한 제재조치가 내려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2015년 연구에 따르면 82%에 달하는 여학생들은 대학 성폭력 예방을 위해 필요한 노력으로서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학교 측의 적극적인 개입’을 꼽았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치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제재조치의 필요성이 있는 때에조차 이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의(不正義)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징계처분 등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제재라는 수단에만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정하고 예외 없는 제재의 강화만으로도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재를 위한 조사망과 감시망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게 된다면 문제 상황은 다시금 원점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대학사회 전반의 인권감수성 고양 없이 제재와 처벌에 의존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도 참다운 의미의 개선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가해자의 언동은 언젠가 또 다른 곳에서 재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를 대학으로부터 배제해 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식과 태도 개선의 유도 없는 제재조치란 지금 이 곳의 문제를 단지 다른 때와 장소로 ‘위치이동’시키는 것에 불과할 우려가 있다. 엄정한 제재와 교육을 통한 인식·태도 개선, 그리고 인권지향적 문화의 형성은 동시에 고민되어야만 한다.

예방을 위한 교육은 성폭력에 관한 개념과 사례를 소개하는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을 해서는 아니 되는지를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폭력 문제가 빈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념과 사례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수의 문제는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는 생각 없이 ‘장난처럼’, ‘게임처럼’, 또는 ‘놀이처럼’ 경솔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재하는 것, 여기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개념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책임에 대한 감각 또는 민감성’이다. 따라서 예방교육은 책임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고 고양하는 내용과 방식을 포함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예방교육은 또한, 타인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방식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M. C. Nussbaum)은 인권에 있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타인의 삶에 감정적으로 참여하는 능력’의 불가결성을 강조한 바 있다. ‘나’의 언동이 누군가에게 얼마만큼의 상처와 고통, 모멸감을 줄 수 있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상상해 보았던 사람이라면 함부로 쉽게 잘못을 범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대 인권센터의 경우, 성희롱·성폭력 사안의 마무리로서 가해자교육을 부과하고 있는데 그 교육의 주된 내용은 피해자의 입장과 마음을 찬찬히 이해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얼마만큼 입힌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해자들을 종종 본다. ‘잘못’인 줄은 알더라도 그 잘못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각 대학에서 성폭력 사안에 대한 제재조치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우선 지금은 제재의 정상화, 그리고 그 다음에 교육의 개선’ 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방교육 참여율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차후의 논의로 미룰 수도 없다. 대학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이 다른 여러 중요한 내용과 더불어 책임성을 고양하고 공감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2016. 9. 29.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 「대학 양성평등 문화 확산과 성폭력예방 정책 세미나」에서 필자가 토론한 내용을 축약·정리한 것임)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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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호 [오피니언] (2016-10-04)

박찬성 변호사 ‧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전문위원 (polics82@snu.ac.kr)

 




출처: http://www.womennews.co.kr/news/98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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