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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7회 열린인권강좌> 제1강: "우리 시대 공정과 정의 담론"
  • Category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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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2019-07-17 16: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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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7회 열린인권강좌> 제1강: "우리 시대 공정과 정의 담론"
(강연자: 조형근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작성: 이선호 (건축학과)

 2019년 7월 2일 (화요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제 7회 열린인권강좌: 어떤 정의? 사회정의와 인권에 대한 질문들>가 시작되었다. 한 달 동안 이어질 열린인권강좌의 첫 문을 연 것은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조형근 교수의 ‘우리 시대 공정과 정의 담론’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강연은 현대 사회에서 정의를 규정하는 여러 관점에 대해 개괄하면서, 그 관점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주장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보며 진행되었다. 강연자 스스로가 이 시간의 목적이 ‘정의에 대한 혼란 일으키기’라고 한 만큼,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 대신 수강생들 스스로가 정의에 대해 질문하면서, 앞으로 열릴 강연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현재 한국의 정의 담론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조형근 교수는 바로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정의란 어떤 것인지를 물으며 강의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정의 담론은 긴 시간 동안 진보 진영의 것이었다. 독재 체재 하에서 특권층으로서의 지배층은 부정의, 그에 맞서는 민중과 민주화 세력은 정의라는 명료한 이분법이 오랫동안 유효했다. 그러나 민주 정부의 탄생과 함께 진보개혁세력의 기득권 진입이 이루어졌고, 그 동안 동료로 간주되었던 민중•서민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같은 민중들 사이에서 부의 분배 문제가 대두되었고, 성평등, 다문화주의가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면서 그러한 문제에서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집단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갈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장은 ‘공평한 경쟁을 통한 것은 곧 정의다’는 논리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동일한 경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특권과 반칙에 대해 분노하며, 공평한 경쟁을 거쳐 나타난 결과로서의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경쟁을 거치지 않았기에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지역균형선발이나 여성할당제와 같은 소수자 우대 정책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역차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회의 평등, 결과의 불평등’이라는 롤스의 슬로건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기회를 어디까지 평등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는 제쳐두고서라도). 기회는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하되, 그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 노력, 재능에 따른 결과가 불평등할 수 있음은 인정하자는 것으로 쉬이 이해되는 이 논리는 모든 것을 방임해버리는 자유지상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의 결과적 평등론도 비판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롤스 또한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물며 성별, 인종, 출신지역, 출신 사회 계층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한 경쟁을 치르게 하자는 사람들도, 완전한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지는 못한다. ‘공정한 경쟁’의 큰 축을 차지하는 요소인 재능 또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재능에 타고날 것인지를 선택해 태어날 수 없고, 자신이 가진 재능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는 것 또한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관점은 선천적 재능이 불평등하고 우연적인 분배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또한, 이 관점은 장애인을 포함하여 선천적•후천적 요인에 의해 다수의 사람들과 공정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해 주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보상은 결국 복지와 같은 보충적 원리를 통해서만 설명된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공동체주의가 등장한다. 이 관점에서, 정의는 공동체의 문화, 역사에 귀속된 것이고, 따라서 그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 우리가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사회적인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것을 정의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때 정의는 ‘어떤 사회가 그 사회 특유의 관습과 제도들 속에 각인된,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해에 합치되도록 행동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해외에서 곤경에 처한 한국인이 보이면 우선적으로 도우려 하는 것,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그 공동체의 후손들이 속죄하는 것 등은 같은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로서 정의를 실천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공동체 내의 불행한 이들을 도와야만 한다는 연대의 의무로 발전한다. 개개인은 고립된, 독립적인 자아가 아니며, 사람들과의 관계-공동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는 폐쇄성과 배타성을 가지기 쉽다. 공동체의 결속은 강력한 역사•전통을 통해 이루어지고,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는 타인으로만 취급된다. 역사적으로도 공동체주의는 곧잘 타인들을 배척하고 탄압하는 형태로 드러날 때가 많았다. 이와 같은 공동체에 대한 우월의식과 폐쇄성에 맞설 때, 공동체가 저지른 잘못에 느끼는 수치심은 공동체에 가지는 자부심만큼 중요해진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공동체의 잘못을 비판함과 동시에, 연대의무를 외부로까지 확장시킬 때 개방적인 공동체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회의 평등’의 이상만큼이나 어렵고, 요원해 보이는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조형근 교수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끝으로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가 하나의 사회에서 평온하게 공존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보통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이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동시에 다문화주의는 효율적인 노동 통제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노동자들간의 소통에서의 어려움이 단결을 저해하고, 불평등에 의한 분노가 기득권층이 아닌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향하도록 한다. 이처럼, 현재 우리의 시대에 나타나는 정의의 문제들은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뚜렷한 해결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의의 개념에 대해 계속해서 재검토를 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정의에 대한 논의들은 아름다운 타협이 아닌 집요하고 지난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할 뿐이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는 사회 내에서 정의론의 주체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대해 조형근 교수는 지금까지의 정의론은 국민국가 안의 ‘정상인’만 고려하는 정의론이 주를 이루었으며, 시민권을 가진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정의론에서 잉여적이고 부차적인 위치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와 같이 기존에 존재했던 정의론들의 구멍들이 현재 우리들이 부딪히고 있는 질문들이고, 또한 부딪혀야만 하는 질문들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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