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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9회 열린인권강좌> 카인몬쪼 제1강: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소수민족, 국내 정치, 미·중 관계"
  • Category소식
  • Writer성희롱·성폭력상담소
  • Date2021-05-07 14:00:24
  • Pageview353
<제9회 열린인권강좌>
제1강: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소수민족, 국내 정치, 미·중 관계 "
(강연자: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작성자: 카인몬쪼 Khine Mon Kyaw
 
미얀마 사람으로서 강의를 통해 미얀마 이야기를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얀마 이야기를 하는데 미얀마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후기를 쓰게 됐습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과 국가 통합
강의에서 미얀마의 3가지 딜레마로 국민국가 정체성, 민주화, 강대국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얀마의 국민국가 정체성이라고 하면 쿠데타 1962년 이후 혹은 8888항쟁 이후의 세대들은 약간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 세대들은 군부의 학교 교육 교과서나 여러가지 미디어로부터 미얀마에는 14개의 민족들이 모여 살아야 하는 곳이고 우리는 흝어져서는 살 수 없다, 모여야 힘이 된다 등의 식으로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미얀마의 정체성은 14개의 민족 같이 있는 것 그게 당연하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얀마에서도 양곤이나 대도시에 자란 사람들 또는 버마 민족 사람들은 다른 민족들이 생각하는 불평등이나 억울함을 솔직히 이해 못 했습니다. 실감도 못 했습니다. 오히려 민족성이나 자기 민족에 대한 애정심이 강한 민족들, 특히 야카인이나 쌴에 대한 편견들이 있었고 그런 민족들로 부터 다른 민족들이 더 피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야카인사람들은 자기 민족끼리만 결혼하게 한다. 결혼시킨다. 다른 민족하고 결혼하게 되면 야카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또는 샨 민족들은 마약을 많이 사용하고 대부분이 약쟁이다. 그리고 따라서 반군들이 많이 있어 나라가 불안전하게 된다.’와 같은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있지만 설명하셨던 대로 미얀마라는 국가를 위해 그런 민족들을 억압하거나 나라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군부가 필요한다 그런 식으로 교육을 대대로 해왔기에 8888항쟁 이후 세대들은 그렇게만 믿고 컸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생각 못 하게 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부라고 했던 수치여사정부가 로힝야 문제에 군대를 위해 나서줬을 때도 그게 당연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때는 인권이라는 것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인권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하지만, 아직도 미얀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서 모릅니다. 사실 지금도 민주화를 원하지만 로힝야나 다른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미얀마는 1947년에 독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독재정부로 인해 여러 면에서 문이 닫혔기 때문에 교육, 사고방식, 가치관, 문화 등이 옛날 그대로 멈춰 있었습니다.
 
또한 군부가 미얀마 버마사람 90%가 믿는 불교를 국가종교로 정함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이는 나머지 종교 신자들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사회적 문제, 종교적으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 사회들하고 갈등들이 갈 수록 커져 가게 만들었습니다. 군부가 정권을 잡아야 불교가 힘을 얻게 되고 자기 민족, 언어, 종교가 오래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국민들(버마 사람들)한테 군부독재 시절 내내 심어줬습니다. 군부가 지도해서 하는 불교행사, 불교 축제 등이 있었습니다. ‘군부가 불교를 지키고 있다’는 등 불교의 수호자 이미지 등으로 군대 안에서 자기들의 정당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수치여사의 정부가 들어섰을 때 세계의 여러 종교를 학교 교과서에 새로 소개하였는데 그때 못 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주로 군부, 그리고 극심한 불교신자들이 대부분 그러하였지만, 일반 불교신자들 사이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대대로 군부가 주장해왔고 군대에서 세뇌시킨 말이 있었습니다. ‘수치가 올라오면 불교가 사라진다’는 말이었습니다. 또는 ‘수치여사는 외국인과 결혼한 여자다’, ‘수치여사가 정권을 잡게 되면 민족성도 사라지고 민족의 순수성도 없어진다’고 군대 안에서 교육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군대 집안, 군대 주변에서부터 그런 소문들을 퍼지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말들이 어이없고 바보 같은 말들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고, 또는 민족 우월 의식이 있는 일부 버마민족 사람들한테는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이용해서 군부는 버마민족들이 믿는 불교 또는 민족성을 지켜 주는 수호자 이미지를 키워 왔습니다.
 
빛을 본적이 없으면 어두움에 익숙하고 적응하며 살아가겠지만 어두움을 경험 해봤고 빛도 본 적 있는 사람들한테는 어두움이 다시 오는 것이 더욱더 무섭기만 합니다.

또는 미얀마에서 버마 민족들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차별받는 민족이 아닌 이상 그 마음, 생각, 차별당하는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미얀마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기 위해 평등, 인권 등에 대한 많은 교육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얀마의 민주화
지금까지 미얀마가 민주화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 25%를 군인들이 자리 잡은 데다가 군대가 우위에 있도록 만들어 놓은 2008 헌법을 못 고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치여사정부는 2008헌법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에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군부의 헌법을 고치려다가 2007년도에 우꼬니(U Ko Ni)라는 수치여사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무슬림 변호사가 공항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옆에서 머리에 총을 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범인을 못 찾았습니다. (그분은 수치여사의 국가고문이라는 자리를 2008헌법에 맞게 찾아내주었습니다.) 수치여사정부는 여태까지 2008헌법을 미얀마 국회에서 수정하지 못 하고 결국은 쿠데타를 당했습니다.
 
수치여사정부가 실수를 했던 것은 로힝야 민족 학살 사태에 군부를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군부는 언젠가는 원래 권력을 다시 가질 기회를 준비해왔습니다.
 
국민들은 그래도 10년 동안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느끼며 살았지만 군부 그리고 폐쇄적인 군대 안은 10년 전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미-중 관계
미얀마의 시장은 원래부터 국내 물건이 아니라 주로 중국 물건들을 소비하는 시장이었습니다. 미얀마 시장에 있는 야채, 과일, 생필품들은 국경을 넘어 들어온 중국 물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부 시절 서양 국가들로부터 문을 닫은 시절에는 중국의 투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미얀마에 원래 중국교포들이 많이 있기에 중국에 대해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중국이 문닫은 미국보다는 국민사이에서도 친근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유년기에 중국어를 배우거나 한국의 태권도 운동처럼 중국 우슈 (wushu)운동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방송국에서도 중국 드라마만 방영해줬습니다. 대신에 미국에 대한 정보를 아예 막았고 미국이나 서구문화가 들어오면 민족이나 종교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들만 방송했습니다.
 
미얀마의 민족성, 미얀마의 문화 혹은 버마인의 민족, 버마인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서구문화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홍보들만 있었습니다.
 
수치여사정부가 2015년 선거에 이겨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바마정부의 지지도 많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권 바꾸는 타이밍에 오바마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하였고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게 막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내 틈을 노리고 있었던 군부는 이번에 결국 쿠데타를 일으키고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지지까지 받게 되었고 중국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군부 편을 들어주면서 현재까지 93일 동안 미얀마 국민들이 힘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현재 버마 민족들은 로힝야 사태가 있었던 당시에도 몰랐던 혹은 모른 채 하였던 군대의 악마 모습이 다 드러나면서 옛날부터 소수민족 출신 국민들에게 저질렀던 범죄들, 당했을 것 같은 일들을 실감하게 되고, 속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죄송하기엔 늦었지만 내내 반군이라고 불렀던 소수민족 반군들의 도움을 받고 군대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소수민족 군대의 도움으로 군대를 물리치고 민족 간의 평등, 평화가 빨리 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후기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강의를 정말 잘 들었고 미얀마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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