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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9회 열린인권강좌> 정호영 제3강: "소수민족과 함께하는 미얀마 인권과 평화"
  • Category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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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2021-05-18 17: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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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열린인권강좌>
제3강: "소수민족과 함께하는 미얀마 인권과 평화"
(강연자: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제9회 열린인권강좌 <미얀마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있는 정호영 님께서 미얀마 군부의 이슬람포비아와 관련해 2015년 가을에 쓰신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방글라데시와의 관계로 보는 미얀마 무슬림들 로힝야 종족

정호영(훗 출판사)

 
로힝야 종족(Rohinga)은 불교국가인 미얀마 서부에서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라킨주(Rakhine)의 북부 지역에 사는 무슬림들로 미얀마의 130여 개 소수 민족 가운데 가장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단지 이들이 소수종족이라서 이렇게 억압 받는 것이 아니다. 중국 기원의 미얀마인들은 160여만명이지만 다수 종족인 버마족(Burman)에게 로힝야 종족처럼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미얀마 내에서 종족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있지만 소승불교를 믿으며 버마어를 모국어로 구사하기 때문이다.

라킨 주는 이전에 아라칸 주(Arakan)로 불리던 곳으로 아라칸 산맥에 막혀서 아라칸 종족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며 미얀마보다 벵갈과 교류가 많았다. 50년간 이들 백만명의 로힝야 무슬림들은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 1978년 미얀마 군부가 용왕 작전(operation nagain(dragon king))을 시작하면서 이들을 인종청소하기 시작했고 2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탈출을 했다. 1982년 미얀마 정부는 이들에게 영국이 들어오기 이전에 미얀마에서의 “존재 증명”을 요구하는 새 시민권법을 입법했다. 대부분은 증명할 수 없었다. 로힝야족들은 9세기경 미얀마에 정착한 아랍상인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이들이 이들이 영국에 의해 이곳에 끌려온 인도 노동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양자의 주장이 다 맞을 것이다. 그렇게 기원이 다른 이들이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계속 살아오던 벵갈인들일수도 있다. 로힝야어는 어족상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족 언어와 유사하다. 그러나 기원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들은 오랫동안 거기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이 조사로 인해서 또 25만명이 1991년에서 1992년 사이에 방글라데시로 탈출을 했다. 방글라데시 군부는 어리석게도 이들 로힝야들을 무장시켜서 아라칸 주 북부에 무슬림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는 더 심한 탄압을 가져왔다.

1977년과 1991년 로힝야가 방글라데시 남서부로 피난 왔을 때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에 대해서 별 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방글라데시 자체가 NGO들이 사실상 군벌처럼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와하비즘에 기반을 둔 극단적인 이슬람 NGO들이 로힝야를 지원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1] 미얀마 군부로서는 이들 극단적 이슬람 NGO와 로힝야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것은 로힝야 탄압에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로힝야는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일 뿐이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로힝야는 환영 받지 못한다. 방글라데시는 친이슬람을 표방하는 세력과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번갈아 집권을 하고 있다. 지금은 세속주의를 내세우는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 정부는 로힝야가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인 자맛-이-이슬람(Bangladesh_Jamaat-e-Islami)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방글라데시 남쪽의 난민캠프를 닫고 더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방글라데시로 들어갈 수 없게 된 로힝야들은 같은 무슬림들이 사는 국가인 말레이지아 등으로 가기 위해서 애를 쓰는데 불법이민 에이전시에게 두당 1000불을 주고 동남아로 가고 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인도네시아나 인도에 발각되면 그들은 다시 송환을 당해야 한다. 이들은 무국적자이기에 토지를 몰수 당하고 강제 노동을 해야 하며 불교로 강제 개종을 당한다. 타국에서는 난민 수용조차 거부 당했다. 2012년 미얀마가 민주화되는 외양을 갖추기 시작할 때 라킨 주에서는 불교도와 무슬림의 지독한 폭력이 터져나왔다. 800명이 죽고 8만명이 집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중도 합리주의자라는 괘 괜찮은 평을 받았던 대통령인 떼인 세인(Thein Sein)은 이들을 “불법 벵갈인 이주자”이라 부르고 제3국으로 떠나라고 했다. 아웅산 수지는 “내가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서 완전히 빠져버렸다. 국제적인 비판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답변은 아주 간단하다. 로힝야 종족의 존재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2009년 동남아국가 연합에서 로힝야 난민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미얀마 정부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에 어떠한 협상도 시작될 수 없었다.



<지도. 로힝야 족의 난민 탈출 경로[2]>
많은 로힝야가 방글라데시로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타국으로 가서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던 (아라칸이라 불리던) 라킨 주에서 시민권을 인정 받고 차별 없이 사는 것뿐이다.
 
 
[1] Riaz, Ali (2008). Faithful Education: Madrassahs in South Asia. New Brunswick, New Jersey, and London: Rutgers University Press.
[2] http://indiatoday.intoday.in/story/rohingya-muslims-rakhine-myanmar-bordering-bangladesh/1/259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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