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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제9회 열린인권강좌> 카인몬쪼 제6강: "좌담: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유운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활동가"
  • 카테고리미분류
  • 작성자성희롱·성폭력상담소
  • 날짜2021-06-18 13:03:04
  • 조회수715
제9회 열린인권강좌

제6강 좌담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유운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활동가)

작성: 카인몬쪼

미얀마에서 소수민족관련 이야기들의 시작에 항상 삔롱 협정 (Pinlong  Agreement) 이 있다. 삔롱협정은 아웅산장군이 평야 지역만 해방시키고자 했던 영국한테서 평야지역, 고산지역 구분하지 않고 같이 해방시켜 주도록 고산지역 소수민족들하고 의논하고 협의 받은 후 맺은 협정으로 알고 있다. 아웅산장군은 삔롱 회의로 인해 1947년 2월 12일에 삔롱 협정을 고산지역 소수민족들인 샨, 까친, 친 민족들과 맺었다. 계약조건들로는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부에 고산지역들의 대표를 고문직으로 선출, 국경지역들의 자치권, 까친지역의 독립, 민주국가들의 기본권으로서 국경지역 주민들의 권리와 특권 보장, 샨지역의 재정자치권 보장 등 있다. 

그러나 이런 협정을 맺은 아웅산장군은 그해 7월 19일 암살당했다. 원래대로 1948년도에 미얀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해방되었지만 소수민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모든 소수민족들하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도 그 삔롱 협정때 맺은 조건들을 지키지 않은 버마민족 정부의 행위에서 초래되었다. 소수민족들 입장에서 보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버마 민족정부 하에서 살게 된 것이다.  삔롱 협정에서도 합의를 하지 못 했던 카렌민족은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해방된 1948년 바로 직후1949년도부터 버마민족하고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삔롱협정으로 같이 해방된 고산지역 민족들도 버마정부가 삔롱협정 약속조건들을 안 지키며 지방 소속민족들을 차별하고 불평등하게 대우하자 이에 대항해 무장단체로 변해 갔다.  이런 버마민족들과 소수민족들의 불화로 불안한 상태에 빠진 국가의 안전을 되찾기 위해 국가총리 우누(민주적으로 선출된 미얀마의 최초이자 마지막 리더)는 네윈장군한테 군통수권을 주며 임시정부를 부탁했다. 네윈장군은 아웅산장군의 친구이자 영국을 물리치기 위해 일본군 밑에서 군 훈련을 같이 받았던 30명의 군인 중 한 명으로 당시 명성이 높았다.  네윈장군은 2년간 임시정부를 운영한 뒤 민간정부한테 권력을 넘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1962년 3월 2일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현재까지 군이 미얀마 사회 곳곳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버마 군대는 그때부터 국가 안보를 이유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을 억압해 왔다.  반란을 일으키는 소수민족들로부터 버마민족 또는 다른 지역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군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버마 군대의 정당성을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에서 찾았다. 쿠데타 이후 네윈장군의 버마식 사회주의로 인해 미얀마는 모든 면에서 외부로부터 문을 닫았다. 버마식 사회주의 하에서 미얀마 국민들은 종교, 풍습, 미신, 고립주의, 전체주의, 외국인혐오 등의 이념들에 갇혀 살았다.  미얀마는 해방직후 가장 번창했던 아시아국가에서 세계 빈곤국가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삔롱 협정에서 소수민족들과 합의한 내용들이 다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항하는 모든 소수민족을 반군으로 여기며 저지해왔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의 주민들은 군의 공격으로 인해, 평야지방 혹은 버마민족 지역처럼 평화롭게 살 수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로힝야와의 문제 
로힝야와의 문제는 여태까지 있었던 소수민족들의 문제와는 달랐다. 버마인들 사이에서는 과연 로힝야가 미얀마에 계속 살아 온 민족인지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벵골인인지 등의 의문들이 있었다. 미얀마는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오래전 중국에서 내려온 화교들, 이슬람교 인도인, 힌두교 인도인 등 다양하다. 
NUG정부가 최근 기자회견에서 로힝야민족의 미얀마 국적소유 시민권을 보장한다고 하였고 1982년도 미얀마시민권법도 개정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의 봉화방송과 인터뷰한 민아웅라잉사령관은 1982년도 시민권법대로 계속 갈 것이며 로힝야라는 민족이 없고 로힝야를 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로힝야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면 로힝야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민족들이 미얀마의 서쪽 라카인 지역에 거주중이라는 내용이 영국인 프랑시스 부츠난 박사의 1799년 기록에 처음으로 나온다. 그 이후 선거들에서도 로힝야 출신 의원들이 선출된 예들이 있었다.1974년도 국민의회 선거(버마식 사회주의 선거) 에 로힝야 출신 의원 2명이 선출됐다. 그러나 여행 중인 로힝야들한테서 주민등록증을 빼았았다.
1978년도 버마식 사회주의 선거에 로힝야 의원 1명이 선출되었다. 같은 해에 로힝야들을 벵갈리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무단 거주민) 라고 하며 쫓아내어 로힝야 20만명 정도가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가야 했다.1982년도에는 미얀마 시민권 법을 개정했다. 이후로는 로힝야족은 기본 인권을 보호받지 못 한 채 군부로부터 체계적인 박해를 받아 왔다. 
군부는 로힝야 민족을 언어, 종교, 피부색 등이 다르다는 점에서 미얀마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오래 전부터 미얀마 사회에 다른 종교 특히 이슬람에 대한 경계심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그것을 악용해 로힝야 박해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심지어 2017년 로힝야 학살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때에도 미얀마 사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미얀마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군부는 민족, 언어, 종교의 수호자인 것처럼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다른 민족의 입장을 전혀 대표하지 않고 단지 다수의 버마어를 사용하는 불교도 버마족의 입장만을 대표한 주장이다. 강의에서 유운 활동가님 말씀대로 미얀마에서 소수민족 로힝야 문제 외에도 다른 미얀마국민들과 동등한 대우를 잘 받지 못하는 민족 또는 계층들이 있다. 오래전에 조부모 때 이주해왔는데 현재까지 시민권이 없는 미얀마 거주 인도족, 중국 화교 등의 문제들도 있다. 주민등록증에 민족, 종교라는 사항을 넣어 구분하게 하는 것은 차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미얀마에는 기본 인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높여 줄 교육이 많이 필요하다. 

이번에 국민통합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사회의 기반을 바로잡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미얀마 인권과 민주주의 강의를 기획해준 인권센터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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