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인권이 없으면 대학도 없다 / 박찬성
또 한 번 우리 대학 사회는 홍역을 앓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터져 나오는 소식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에서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했다느니, 폭언·폭행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느니 하는 것들 말이다.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며, 대학 사회 내에서 모든 구성원의 인권이 최대 한도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학문의 본령이라 할 토론과 논쟁이 본디부터 동등하며 존엄한 인격체들 간의 상호소통을 뜻하는 것이기에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은 당연히 가장 수평적이고 평등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망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옳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최소한 언론에 비치는 일부 모습들만 놓고 보면 동등함에 기반한 상호존중은 온데간데없고 성차와 권력차, 권위주의적 위계서열과 폭력성의 적나라한 민낯뿐이다. 동등함과 상호존중을 전제하지 않는 토론과 논쟁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라면, 성희롱·성폭력과 그 밖의 인권침해가 스스럼없이 자행되는 곳에 학문공동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슬프지만, 단언컨대 거기에 ‘대학’은 없다.
대학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초·중·고교 과정에서 응당 이루어져야 할 민주시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대의 관점과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려할 수 있도록,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언행이 심각한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며 주의하도록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단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날 갑자기 존중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당연히 이루어졌어야 할 것들이 이제껏 미루어졌고, 그런 탓에 당연히 행해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자행되어 왔다면, 이제부터라도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학생들 자신의 자각과 변화 노력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그 이외에도 인권센터·양성평등상담소 등 대학 내 인권보호기관, 그리고 대학 안팎의 모든 유관부서 등이 더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서울대에서는 ‘인권/성평등교육’을 더 강화해 올해 입학생부터 이를 졸업 필수요건으로 확대개편할 예정이다. 학내 인권보호기관인 서울대 인권센터에서는 학기 중 매월 셋째 주 목요일을 ‘인권/성평등교육의 날’로 지정해 오프라인 인권교육을 진행해왔고, 방학 때마다 ‘학생회 대표자를 위한 인권학교’ 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이런 노력이 서울대만의 예외 사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사실 어렵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나’를 중심에 두기에 앞서 상대의 입장과 상황, 관점과 의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와 그 실천. 하지만 우리 모두의 작은 관심과 성찰, 그리고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한 크고 강력한 의지는 여전히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대학이 진정 대학이기 위해서, 인권친화적 캠퍼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박찬성 변호사,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