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후기] 제4강: "프랑스혁명과 인권"

관리자 2016-07-12 6,103

<제4회 열린인권강좌>
[후기] 제4강: "프랑스혁명과 인권"

 (강연자: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양웅석 (정치학과 석사과정)
 
서양사학과 최갑수 선생님께서는 17·18세기 서구에서 일어난 근대혁명의 핵심적인 의미를 밝히면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혁명을 통해 수립된 근대국가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신분제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자 주권자로 자리매김했고, 국가권력은 군주제의 자의적인 통치에서 법에 따른 합리적 통치로 그 성격이 변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보의 이면에는 근대 인권의 한계가 존재했다. 즉, 대내적으로는 자유와 평등, 인권에 대한 보장이 점차 증진되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해외 식민지로 예속과 폭력이 수출되었던 것이다. 인권은 서구 근대국가의 구성원들에게만 보장되었을 뿐, 그러한 국가에 속하지 않은 인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국가는 주요한 인권보장의 주체이자 인권침해 가해자라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역사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단지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논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준다.
 
(사진: 안미혜)
위와 같은 근대인권의 의의와 한계는 각 혁명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국혁명, 즉 청교도혁명(1629-60, 혹은 잉글랜드 내전) 및 명예혁명(1688-89)은 권리청원과 권리장전을 통해 오늘날 자유권이라 일컬어지는 권리를 획득했으나, 그것의 성격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영국인’의 전통적인 자유와 권리였다. 미국혁명(1774-89)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영국인의 권리를 요구하며 시작되었지만, 독립선언서(1776)에서는 보편적인 천부인권을 ‘상식’으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789년의 헌법에서는 흑인노예 문제를 둘러싸고 남부와 북부의 결합, 그리고 엘리트 노예주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흑인의 가치를 백인의 3/5로 책정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진: 안미혜)
프랑스혁명(1789-99)은 인권의 역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혁명기에 작성된 권리선언과 헌법들에서는 보편으로 여겨지는 다양한 자유권과 사회권들이 명기되었는데, 그 형태는 이후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과 인권으로 계승되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혁명의 상승 및 하강 국면에 따라 그 문서들의 성격은 보다 부르주아적 혹은 보다 민중적으로 달라지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는 소유권이 인권에 포함되는 등 부르주아의 특수한 세계관이 반영되었다. 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1793)’이라는 권리선언의 제목은 인간과 시민을 서로 다른 범주로 구분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 당시 시민은 백인 남성 유산자로서 폭넓은 인권을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고, 그 외의 공동체 구성원들(여성, 무산 노동자)은 기본적인 인권만을 제한적으로 보장받았다. 즉, 근대 인권은 보편성과 규범성을 표방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물론이요 대내적으로도 배타적이고 차별적이었던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안미혜)
물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이미 많은 비판들을 받아왔고, 이제는 일종의 상식이 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현실이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의 집합적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역사적 상상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특히 오늘날 인권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규범적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역사를 고려한다면 현대의 인권 역시 구체적인 맥락 속에 잠재된 차별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인권의 보편성을 규정하는 배후 규범이 오히려 또 다른 배타성을 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더욱더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권은 아름답기에 그만큼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며, 현실의 맥락을 간과하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최갑수 선생님의 강의는 인권에 대한 깊은 고민과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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