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열린인권강좌> 제5강 K-디아스포라?: 한국사회와 재일조선인
강의: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2022. 7. 20.)
허선욱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정치학 전공 석사과정)
한 집단의 명칭은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과 남한인이라는 명칭은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구별 짓고 있는 대상이 상이하다. 전자는 다른 모든 국가를 구별 대상으로 삼는 반면 후자는 북한을 특정하여 구별 대상으로 삼는 느낌이 더 강조된다. 이렇듯 집단을 명명하는 표현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다. 그런 측면에서 재일동포를 일컫는 표현은 그들의 ‘타자로서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조선적’이라는 명칭에 대해 살펴보자. 제국주의 일본은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후 조선(대한제국) 사람들을 ‘조선인’이라고 불렀는데,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1947년에 그들의 일본 국적을 일괄적으로 박탈하고 외국인 등록을 시켜버렸다. 이들이 국적을 상실할 당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두 수립 이전(둘 다 1948년에 정부수립)이었으므로, 일본 거주 한반도 출신 사람들은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조선적’이라는 국적으로 외국인 등록이 되었다. 이때 일본 정부에 의해 조선적으로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재일조선인이다. 조경희 교수님에 따르면, 당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그대로 ‘조선적(조선국적)’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선적의 사람들은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상황이므로 사실상 국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국제법적으로 무국적 난민의 지위에 있다고 한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강제 이주된 다른 국가의 ‘조선인’ 디아스포라들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러시아와 동구권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은 고려사람(Корё-сара́м; 고려인)이라고 불리며 그 국가의 국적을 취득했으며, 중국에 있던 동포들은 중국 국적을 받음과 동시에 조선족이라 불리며 문화적, 교육적 자율성을 일정 부분 보장받았다. 제도적으로 중국 국적을 보장받으면서도 동시에 조선족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 등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정체성도 일정 부분 지킬 수 있었던 재중동포들과 달리, 재일동포들은 문화적으로는 일본인으로 동화되는 한편 제도적으로는 국적과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 했던 것이다.
결국 일본에 사는 동포들은 일본인과 외국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고충을 겪는 것을 넘어 집단 내의 분리와 반목이 강제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북의 북송사업과 남한의 간첩 조작 사건과 같이 냉전 시대의 국가 간 다툼은 재일동포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일으켰다. 조경희 교수님이 강좌에서 정체성은 A에서 B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A+B로 축적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이 크게 와 닿았다. 남한의 문화를 향유하며 조선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일본에서 생활을 하는 재일동포들에게는 한국인, 북한인,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모두 함께 뒤섞여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실상의 무국적자로서의 어려움을 감내하는 것이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 수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선택한 사람들을 한국인으로 잘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어가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바로 외국인 취급하며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자를 매우 엄격하게 구분하는 한국인들은 재일동포들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또는 북한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사람들도 ‘재일이냐’는 비난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는 그들은 사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동시에 어디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외국에 사는 한국 동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 출신 이주민, 난민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좌 말미에 교수님은 동포 담론과 혈통의 문제로 점철되어 디아스포라(해외동포)와 이주민 등이 위계화되어 있는 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재외동포와 이주민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하기보단, 경계를 나누고 피아를 구분하는 배타적인 문화 자체를 고찰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