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후기] <국제학술회의> 환경의 지속가능성,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인권

admhrc 2025-01-24 19

[후기] <국제학술회의> 환경의 지속가능성,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인권

 

작성: 손원민(철학과)

 

현시대 인류는 환경파괴로 인한 중대한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 이로부터 촉발된 다양한 층위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는 인권 담론에서도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에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19환경의 지속가능성,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오전 세션에서는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권리가 다른 인권의 해석과 적용에 갖는 함의가 논의됐다. 이어진 오후 세션에서는 동아시아의 인권 기반 기후소송이 지닌 역할과, 정의로운 전환에서 바탕이 돼야 하는 인권의 주요 원칙에 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 일본, 대만의 기후소송 사례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인권 기반 기후소송이 지닌 지역적 함의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우선 한국 ‘Plan 1.5’의 윤세종 변호사가 한국 청소년기후소송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와 과제를 소개하며 시작됐다. 지난해 829,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지 않은 현행법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기후 헌법소원이 처음 제기된 지 4년 반 만이었다. 이는 아시아의 첫 번째 기후소송 판례로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소송의 공동대리인단이었던 윤세종 변호사는 이 판결이 기후변화가 기본권과 연관된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에서는 환경권을 명시한 헌법 35조가 큰 도움이 됐다. 다만 윤세종 변호사는 헌법상 환경권이 명시돼 있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기후변화가 기본권의 침해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환경권을 구성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헌법에 환경권이 명시돼 있지 않은 독일 등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한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2030년의 목표치가 불충분했다는 점 등은 인정받지 못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이를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행정부가 지닌 재량을 고려해 분석과 개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기후 위기는 적절한 때를 놓치면 불가역적인 피해를 낳는 문제이기에,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윤세종 변호사는 이런 이유에서 기후 문제와 관련한 헌법재판소나 법원의 판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일본 기후소송의 대리인인 ‘Kiko Network’의 아사오카 미에(Mie Asaoka) 변호사가 일본 청소년 기후소송의 개요와 과제를 소개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8월 청소년 16명이 주요 10개 화력발전 기업을 상대로 나고야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책이 미비하며, 현재 온실가스 배출 감축 상황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논의된 온도 제한선 1.5를 막기에 적절치 않다. 이에 청소년들은 화력발전 기업이 1.5도 목표에 맞춰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며 기후소송을 진행했다.

아사오카 미에 변호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일본의 사법과 환경법 체계가 지닌 특징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일본에는 환경권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이 없으며, 한국의 헌법재판소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기관도 없다. 더불어 행정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원고가 개별 행정처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요건이 있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는 소송을 제기하기가 어렵다, 이에 일본의 청소년들은 온실가스 배출에 주요한 책임이 있는 화력발전 기업을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진행해 각 기업에게 국제사회의 합의에 비춘 배출량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만 기후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Environmental Rights Foundation, Climate Change & Just Transition’의 린옌팅(Yan-Ting Lin) () 국장이 대만 기후소송 및 정책의 개요와 과제를 소개했다. 대만에서는 2023년 기후변화대응법이 통과되며 ‘2050 탄소 중립 목표가 법조문에 명시됐다. 이 법안은 12개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핵심전략별 행동 계획을 지니고 있는데, 정의로운 전환 역시 핵심 전략 중 하나로 포함돼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린옌팅 전 국장은 기후소송을 단계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법조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대만에서는 정부가 더 적극적인 탄소 감축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기 위한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다. 대만은 한국과 유사한 산업적·정치적 특성이 있어, 양국의 판례가 서로에게 중요하다. 우선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반도체가 주요 산업 중 하나다. 전력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산업의 측면에서 탈탄소화를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대만 역시 정치적으로 여소야대이며,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수가 충분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적 시도로 변화의 물꼬를 트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여전히 남은 과제다.

이후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재홍 교수가 동아시아의 기후소송이 지닌 함의를 짚고, 각 사례에 의견을 덧붙였다. 이재홍 교수는 한국의 기후소송 헌법불합치 사례가 국제기준과 헌법이라는 두 규범이 함께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며 이는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지니는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소송 준비를 시작한 2019년에는 승소 사례도 없었을뿐더러, 승소할 것이라는 의견을 준 이들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윤세종 변호사는 법의 해석은 급변하는 현실에 맞춰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사법의 영역에서는 각 국가의 사례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며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재홍 교수는 다음으로 불법행위에 근거한 금지청구권의 관점에서 화력발전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한 일본의 경우, 환경권을 침해한 사례를 민법상 불법행위로 볼 수 있는지가 주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이에 아사오카 미에 변호사는 일본에는 환경권 조항 등이 없지만, 자연재해와 관련한 경험이 축적되며 이때의 과실과 의무가 큰 쟁점이 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다만 금지청구권의 보수적인 적용 등 여전히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이재홍 교수는 대만 기후소송은 한국과 유사한 쟁점을 지니고 있으나, 대만의 국제적인 입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언급했다. 대만은 파리협정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국가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린옌팅 전 국장은 유엔 회원이 아닌 대만이 국제적 차원에서 지닌 어려움을 수긍하며, 유엔의 기후변화 관련 법을 대만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세 번째 세션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할 때 고려돼야 할 인권 원칙과 쟁점이 다뤄졌다. 우선 영국 에식스 대학 법과대학의 주디스 부에노 드 메스키타(Judith Bueno de Mesquita) 교수가 포스트 성장주의적 접근과 인권을 주제로 논의를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은 파리협정을 비롯한 국제 문서에서 중요하게 언급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의 논리에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는 특히 유한한 지구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목표와 생태학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느냐는 비판이 중요하다.

부에노 드 메스키타 교수는 대안적 접근으로서 포스트 성장주의를 소개했다. 지속가능한 탈성장의 맥락에서 케이트 레이워스가 고안한 도넛 경제학이 대표적이다. 도넛 경제학은 생태적 한계 내에서 인간 존엄성의 사회적 기초가 되는 활동이 이뤄져야 함을 말한다.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와 국제적 협력 등이 탈성장 정책에 포함될 수 있다. 부에노 드 메스키타 교수는 탈성장은 긴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전환을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에콰도르나 부탄의 사례와 같이 국가적 차원에서도 경제성장이 아닌 인간과 환경의 관계, 폭넓은 의미의 웰빙을 목표로 설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마가레타 웨웨링 싱(Margaretha Wewerinke-Singh) 지속가능성법 교수가 기후변화 대응 관련 국가의 인권 의무와 에너지에 대한 인권적 접근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 국가에서 에너지의 생산, 자금 조달,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화석연료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것과 저렴한 청정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 취약계층의 피해를 구제하는 것은 함께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각 국가가 지닌 의무를 분명히 짚는 것이 중요하다.

 

이날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중대하게 떠오른 환경파괴와 생태 위기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고려돼야 할 것들이 폭넓게 논의됐다. 발표와 토론 및 질의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최근의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는 익숙한 기존의 관행과 제도, 그리고 세계관까지 전적으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인권 담론 역시 새롭게 떠오른 문제와 세계관을 마주하며, 의미를 다시금 써나가야 한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에 축적된 인권의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권과 환경 문제의 교차 지점을 고민하며 다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 문제는 중대할 뿐만 아니라 시급하기도 하다. 각 영역에서 학제적인 연구와 실천이 활발히 일어나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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